2장 16-20절
2장 16-20절
『미디안 제사장에게 일곱 딸이 있더니 그들이 와서 물을 길어 구유에 채우고 그 아비의 양무리에게
먹이려 하는데 목자들이 와서 그들을 쫓는지라 모세가 일어나 그들을 도와 그 양무리에게 먹이니라 그들이 그 아비 르우엘에게 이를 때에 아비가 가로되
너희가 오늘은 어찌하여 이같이 속히 돌아오느냐 그들이 가로되 한 애굽 사람이 우리를 목자들의 손에서 건져내고 우리를 위하여 물을 길어 양무리에게
먹였나이다 아비가 딸들에게 이르되 그 사람이 어디 있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그 사람을 버리고 왔느냐 그를 청하여 음식으로 대접하라 하였더라』(개역개정)
16.『미디안 제사장에게 일곱 딸이 있더니 그들이
와서 물을 길어 구유에 채우고 그 아비의 양무리에게 먹이려 하는데』
וּלְכֹהֵ֥ן מִדְיָ֖ן שֶׁ֣בַע בָּנֹ֑ות וַתָּבֹ֣אנָה וַתִּדְלֶ֗נָה וַתְּמַלֶּ֨אנָה֙ אֶת־הָ֣רְהָטִ֔ים לְהַשְׁקֹ֖ות צֹ֥אן אֲבִיהֶֽן׃
우레코헨(제사장) 미디안 쉐바(일곱) 바노트(딸) 왓타보나(그들이 왔다) 왓틷레나(물을 길어) 왓트말레나(채우고) 에트(그들이) 하르하팀(물통) 르하스코트(물을 먹일) 촌(양무리) 아비헨(그들의 아버지)
요셉이 팔려갈 때, 이스마엘 사람들 중 미디안
족속 상인들에게 팔려갔다. 사라가 낳지 않은 다른 사람들은 이스마엘에 해당한다. 그두라가 낳은 아들 중에 하나가 미디안이다. 모세도 요셉이 팔려가는
그 길을 가는 것이다.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 자랐지만 자기의 백성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애굽의 군사를
죽임으로 애굽으로부터 쫒기는 신세가 되었다. 그래서 이방 땅인 미디안으로 가버린 것이다. 예수님도 유대 땅에 태어났지만 유대인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복음이 이방인에게 흘러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모세는 르우엘의 딸들에게 생명의 물이 전해지는 것이다.
출애굽기 2장 15절에서 우물이 브엘이다. 물을 긷는 우물은 브엘쉐바가 되어야 하는데, 브엘만 있고 쉐바는 없는 것이다. 요셉이 빈 구덩이에 던져진 것과
같은 우물이다. 모세가 빈 구덩이에 있는데, 쉐바를 만나게
된다. 쉐바는 이후에 장인이 될 이드로의 딸들이다. 미디안
구덩이에는 아직 쉐바가 없다. 미디안 제사장의 일곱 딸이 양떼에 물을 먹이려고 우물에 오게 된다. 미디안 제사장은 이드로이지만, 먼저 르우엘로 소개된다. 르우엘은 하나님의 친구라는 의미다. 르우엘의 딸이 일곱인데, 일곱 딸이 이곳으로 오므로서 모세가 브엘세바가 되는 것이다. 곧
생명나무가 있는 율법이 되는 것이다.
17.『목자들이 와서 그들을 쫓는지라 모세가 일어나 그들을 도와(야센) 그 양무리에게 먹이니라』
וַיָּבֹ֥אוּ הָרֹעִ֖ים וַיְגָרְשׁ֑וּם וַיָּ֤קָם מֹשֶׁה֙ וַיֹּ֣ושִׁעָ֔ן וַיַּ֖שְׁקְ אֶת־צֹאנָֽם׃
와야보우 (왔다) 하로임(목자들) 와이가르슘(그들을
쫒다) 와야캄(일어서다) 모세
와요오시안(그들을 돕다) 와야쉬크(물을 먹이다) 에트(격조사) 초남(양무리)
목자들은 브엘쉐바가 아닌 목자들이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가진 목자들이 딸들이 데려온 양떼들을 쫒아버렸다. 모세가 딸들의 양을 구하여 물을 먹인 것이다. 모세가 일곱 양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야곱이 삼촌 라반의 집으로
갈 때, 세 양무리(레아,
라헬, 라반의 양들)를 만나는데, 여기서는 일곱 양무리를 만나는 것이다. 『야곱이 그들과 말하는 중에 라헬이 그 아비의 양과 함께 오니 그가 그의 양들을 침이었더라
야곱이 그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그 외삼촌의 양을 보고 나아가서 우물 아구에서 돌을 옮기고 외삼촌 라반의 양떼에게 물을 먹이고 (창세기 29:10)』
18. 『그들이 그 아비 르우엘에게 이를 때에 아비가 가로되 너희가 오늘은 어찌하여 이같이 속히 돌아오느냐』
וַתָּבֹ֕אנָה אֶל־רְעוּאֵ֖ל אֲבִיהֶ֑ן וַיֹּ֕אמֶר מַדּ֛וּעַ מִהַרְתֶּ֥ן בֹּ֖א הַיֹּֽום׃
왓타보나(그들이 왔다) 엘(~에게) 르우엘 아비헨(그들의
아버지) 와요메르(말했다)
마두아(관계사) 미하르텐(일찍) 보(돌아오다) 하욤(오늘)
레우(친구)는
레아와 같은 의미다. 레우에 엘이 붙어서 르우엘, 즉 하나님의
친구라는 의미가 된다. 성경에서 말하는 친구는 하나인 존재를 의미한다.
모세가 하나님을 대면하다라는 말은 모세가 하나님의 친구라는 의미가 된다.『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그 수종자 눈의 아들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출애굽기 33:11)』그리고『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신명기 34:10)』
예수님도 친구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 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한복음 15:13~14)』예수 그리스도는 성도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예수님의 친구가 되는 성도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르우엘이 왜 하나님의 친구인가 라는 것은 일곱 딸이 바로 일곱 양이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모세는 브엘쉐바가 되고, 참된 율법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율법 속에 감추어진 그리스도를 발견해야만 하는데, 이스라엘은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아비가 가로되 너희가 오늘은 어찌하여 이같이 속히 돌아오느냐』아직 낮인데, 어떻게 빨리 이렇게 이루고 돌아왔는가 라는 의미다. 즉 아직 둘째
날이 다 끝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빨리 돌아왔는가 라는 말이다.
19.『그들이 가로되 한 애굽 사람(이쉬)이 우리를 목자들의 손에서 건져내고 우리를 위하여 물을 길어
양무리에게 먹였나이다』
וַתֹּאמַ֕רְןָ אִ֣ישׁ מִצְרִ֔י הִצִּילָ֖נוּ מִיַּ֣ד הָרֹעִ֑ים וְגַם־דָּלֹ֤ה דָלָה֙ לָ֔נוּ וַיַּ֖שְׁקְ אֶת־הַצֹּֽאן׃
왔토마르나(말했다) 이쉬(남자) 미츠리(애굽) 히치라누(우리를
건져내고) 미야드(손으로부터) 하로임(목자들의) 웨감(또한) 다로(심지어) 달라(그가 물을 길어) 와야스카(물을 먹였다) 하촌(양무리에게)
모세는 히브리 사람인데, 여기서는 애굽 사람(이쉬)이라고 말을 한 이유는 자기의 일을 하는 자라는 의미를 갖는
같은 의미다. 애굽 사람이던 이브리 사람이던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브엘쉐바가 되기 전에는 모두가 쉐바였다는 사실이다. 브엘쉐바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인 율법의 남자가 되는 것이다.『손에서 건져내어』라는 말은『모아서 끌어내고』 모세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끌어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먹이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20. 『아비가 딸들에게 이르되 그 사람이
어디 있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그 사람을 버리고 왔느냐 그(에트 이쉬)를
청하여 음식(레헴)으로 대접하라 하였더라』
ַיֹּ֥אמֶר אֶל־בְּנֹתָ֖יו וְאַיֹּ֑ו לָ֤מָּה זֶּה֙ עֲזַבְתֶּ֣ן אֶת־הָאִ֔ישׁ קִרְאֶ֥ן לֹ֖ו וְיֹ֥אכַל לָֽחֶם׃
와요메르(말했다) 엘(~에게) 브네토(딸들) 웨아이요(그가 어디에
있느냐) 람마(관계사) 제흐(그) 아젭텐(너희가 버리고
왔다) 에트(격조사) 하이쉬(그 남자를) 키렌(청하여) 로(그를) 웨요칼(대접하다) 라헴(음식을)
하나님의 친구인 르우엘은 모세가 어떤 인물인지 알고 있었다. 참된
복음의 우물에서 모세가 르우엘의 양떼를 먹였다는 말 속에 이런 의미를 갖는다. 즉 모세라는 우물에서
생명의 물이 흘러 넘쳐서 여인들과 양떼 들에게 생명이 흘러가게 됨을 말하는 것이다. 목마른 자가 생명수를
마시는 것을 구원이라고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에트 이쉬)를 청하여 음식(레헴)으로 대접하라 하였더라』그 남자가 음식을 더불어 먹도록 하라는 말이다. 음식을
함께 먹는 것은 서로 하나되는 모습이다. 이스라엘은 모세를 심판자로 취급했지만, 미디안 제사장은 모세를 복음의 샘물로 여긴 것이다. 그래서 모세가
그의 일곱 딸과 양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예수님의 모습이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수가라는 동네의 우물가에서 여인을 만나서 대화하는
장면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요한복음 4장
18-19절『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여인은
여섯번째의 남편과 살고 있지만 참 남편이 아니라는 말이다. 일곱번째가 진짜 남편이며, 영생으로 나아가는 길이 된다. 영적으로 예수님이 일곱번째의 남편이
되는 것이다. 르우엘의 일곱 딸이 모세를 만나는 장면과 수가 마을의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는 모습은 동일하다. 사마리아는 이스라엘 안에서도 이방인 취급받는 곳이었다. 이방인에게
생명의 복음이 흘러가는 모습을 보여주신다.
우리 인간은 숫자로 표현하자면 육(6)이다. 육이 칠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만 한다. 그래서 칠이 되는데, 성도의 심령 속에 성전이 임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다. 창세기 2장 1절에서 창조 일곱 째 날에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라고 했는데, 제대로 번역을 하면 하늘의 군대와 땅의 군대가 완성되니라 라는 말이다. 그래서
안식으로 들어간다. 성도가 땅의 군대(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이다. 하늘의 군대와 땅의 군대가 하나가 되어 만물이 충만하게
된다. 첫사람 아담은 땅의 군대이고, 마지막 아담은 하늘의
군대인 것이다. 첫사람 아담은 죽어야 할 몸을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마지막
아담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리고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이다. 성도는 남편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하나가 되어 구원을 받게 된다. 이는
일곱 처녀가 브엘쉐바가 되어 우물가에서 모세를 만나고 모세는 그의 아버지 르우엘의 집으로 초대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성도 역시 예수님을 만나 우리의 심령 속으로 초대하여 성전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르우엘은 이방인인 미디안 제사장이였지만 하나님의 친구가 되는 것이다. 성도
역시 사탄의 제사장 노릇을 했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에 왕 같은 제사장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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