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1-6절

 21-6

『레위 족속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었더니 그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그 준수함을 보고 그를 석달을 숨겼더니 더 숨길 수 없이 되매 그를 위하여 갈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이를 거기 담아 하숫가 갈대 사이에 두고 그 누이가 어떻게 되는 것을 알려고 멀리 섰더니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하수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하숫가에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열고 그 아이를 보니 아이가 우는지라 그가 불쌍히 여겨 가로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이로다』(개역개정)

『레위 족속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었더니 그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그 아름다움을 보고 그를 석달을 숨겼더니 더 숨길 수 없이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이를 거기 담아 강가의 갈대 사이에 두고 그 누이가 어떻게 되는 것을 알려고 멀리 섰더니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강가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강가에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열고 그 아이를 보니 아이가 우는지라 그가 연민의 마음이 들어 가로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이로다』(수정안)

 

1-2.『레위 족속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었더니 그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그 준수함을 보고 그를 석달을 숨겼더니(왓티츠프네우 기본형:챠판)

וַיֵּ֥לֶךְ אִ֖ישׁ מִבֵּ֣ית לֵוִ֑י וַיִּקַּ֖ח אֶת־בַּת־לֵוִֽי׃

וַתַּ֥הַר הָאִשָּׁ֖ה וַתֵּ֣לֶד בֵּ֑ן וַתֵּ֤רֶא אֹתֹו֙ כִּי־טֹ֣וב ה֔וּא וַֽתִּצְפְּנֵ֖הוּ שְׁלֹשָׁ֥ה יְרָחִֽים׃

와예렉(갔다) 이쉬(남자) 믿베트(집의) 레위 와이익카(아내를 취하다) 에트(갹조사) () 레위 와타하르(잉태하여) 하이샤(여자) 와테레드(낳다) (아들) 와테레(그녀가 보았다) 오토(그를) (관계사) 토브(준수한) (그가) 왓티츠프네우(그를 숨겼다) 쉘로샤() 예라힘()

 

모세의 아버지는 아므람이고 어머니는 요게벳이었다. 이들은 레위 사람들(제사장 역할)이다. 레위는 연합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연합하여야 할 남자가 연합되어질 여자를 취하였다는 말이다. 그래서 둘이 연합하여 아들을 생산했다. 제사장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역할인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들이 이 땅에 갇혔는데, 그들은 죄인들이다. 그래서 중보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첫사람 아담이 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출애굽 당시에는 모세가 그 역할을 담당하고, 신약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그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왕 같은 제사장이 되는 것이다. 창세기 224절에서『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그래서 아들이 태어나는 것이다. 모세가 위기 속에서 바로의 딸로 인하여 목숨을 구하는 이야기로 들리지만, 그 안에는 아들이 없는 바로의 딸이 아들을 얻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그 준수함을 보고 그를 석달을 숨겼더니』준수하다는 말에 대해서 사도행전 720-22절에서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의 아버지의 집에서 석 달 동안 길리더니 버려진 후에 바로의 딸이 그를 데려다가 자기 아들로 기르매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바로의 학살에 모세를 숨긴 자는 표면적으로는 그의 부모이지만, 사실상 하나님이라는 의미가 된다.

예수님의 생애도 모세와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다. 헤롯이 남자아이를 다 죽이도록 명했던 것이다. 예수님이 죽음에서 벗어나 애굽으로 내려가고 헤롯이 죽고 난 후에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내용이다. 헤롯이 메시야를 죽이려고 하지만 죽일 수 없었듯이, 바로가 모세를 죽이려고 했지만 죽일 수는 없었다. 누가복음 324절에서 예수께서 삼십세에 사역을 시작했다. 삼십세 이전의 삶은 가려져 있었던 것이다. 챠판은 무엇인가 덮어서 감춘 것을 의미한다.

모세의 부모는 모세를 석달동안 숨겼다. 삼십은 삼의 연장이다. 창세기 19-13절에서 셋째 날에 뭍이 드러났다. 그리고 씨맺는 채소와 나무가 등장한다. 삼십에 그리스도가 드러나고 복음의 씨를 뿌리는 것이다. 삼은 샬로시로서 모든 것이 하나가 되는 의미를 갖는다. 달은 예라흐로서 한달 두달 등의 시간의 의미를 갖는다. 요셉이 꿈을 꾸었을 때, 해와 달과 별이 절을 할 때의 달은 야레아흐이다. 예라흐와 야레아흐와 함께 만들어진 것이 바로 절기다.

석달은 세 절기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절기를 지키도록 하셨으며『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23:14)』세가지의 절기를 지키도록 하셨다. 『모세의 명을 좇아 매일에 합의한 대로 안식일과 월삭과 정한 절기 곧 일년의 세 절기 무교절과 칠칠 절과 초막절에 드렸더라 (대하8:13)』이 세 절기의 의미 속에 하나님의 구원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석달을 더 숨길 수 없다는 말은 세 절기 후에 모세가 나오는 것이며,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등장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3-4. 『더 숨길 수 없이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이를 거기 담아 하숫가 갈대 사이에 두고 그 누이가 어떻게 되는 것을 알려고 멀리 섰더니』

וְלֹא־יָכְלָ֣ה עֹוד֮ הַצְּפִינֹו֒ וַתִּֽקַּֽח־לֹו֙ תֵּ֣בַת גֹּ֔מֶא וַתַּחְמְרָ֥ה בַחֵמָ֖ר וּבַזָּ֑פֶת וַתָּ֤שֶׂם בָּהּ֙ אֶת־הַיֶּ֔לֶד וַתָּ֥שֶׂם בַּסּ֖וּף עַל־שְׂפַ֥ת הַיְאֹֽר׃

וַתֵּתַצַּ֥ב אֲחֹתֹ֖ו מֵרָחֹ֑ק לְדֵעָ֕ה מַה־יֵּעָשֶׂ֖ה לֹֽו׃

웨로(부정) 야클라(할 수 있다) 오드(더 이상) 하츠피노(숨기다) 왓틱카(가져다가) (그를 위해) 테밧(갈대상자) 고메(갈대) 왓타흐므라(칠하다) 마헤마르(역청) 우바자펫(나무 진) 왓타쉠(바르고) (그 안에)에트(격조사) 하예레드(아이를) 왓타쉠(뉘어) 바숩(갈대 숲) (~으로) 쉐팟() 하오르(강의) 왓텝챠브(서있다) 아호토(그의 누이) 메라혹(멀리 떨어져서) 르다아(알려고) (관계사) 예아쉐(~되다) (그에게)

출애굽기와 노아의 홍수 사건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갈대상자(테바)와 방주(테바)는 같은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모세의 부모는 나일강에 갈대상자를 띄워 보냈다. 모세는 갈대상자에 태워져 던져진 자라는 의미다. 노아 역시 방주에 들어가 물 위에 띄워졌던 것이다. 강에 던져지고, 홍수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역시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이 죽음이 구원의 시작인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 역시 구원이 이루어진다. 죽음이 생명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에베소서 25-6절에서『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모세의 갈대상자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다. 갈대상자에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한 것이다. 노아의 방주에 대해서,『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6:14)』노아의 방주는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발랐지만, 모세의 갈대상자는 역청과 나무 진을 발랐다.

 

5-6.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하수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하숫가에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나아라)를 보내어 가져다가(왓티카헤아:기본형 라카흐) 열고 그 아이(나아르)를 보니 아이가 우는지라 그가 불쌍히(하말2550) 여겨 가로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이로다』

וַתֵּ֤רֶד בַּת־פַּרְעֹה֙ לִרְחֹ֣ץ עַל־הַיְאֹ֔ר וְנַעֲרֹתֶ֥יהָ הֹלְכֹ֖ת עַל־יַ֣ד הַיְאֹ֑ר וַתֵּ֤רֶא אֶת־הַתֵּבָה֙ בְּתֹ֣וךְ הַסּ֔וּף וַתִּשְׁלַ֥ח אֶת־אֲמָתָ֖הּ וַתִּקָּחֶֽהָ׃

וַתִּפְתַּח֙ וַתִּרְאֵ֣הוּ אֶת־הַיֶּ֔לֶד וְהִנֵּה־נַ֖עַר בֹּכֶ֑ה וַתַּחְמֹ֣ל עָלָ֔יו וַתֹּ֕אמֶר מִיַּלְדֵ֥י הָֽעִבְרִ֖ים זֶֽה׃

왓테렏(내려왔다) () 파라오 리르호스(목욕하다) (~으로) 하오르() 웨나아로테하(시녀들) 호레콧(걸어갔다) (~을 따라) 야드(옆으로) 하오르() 왔테레(그녀는 보았다) 에트(격조사) 핫테바(상자) 브톡(사이) 하숩(갈대) 왓티쉴라(그녀가 보냈다) 에트(격조사) 아마타(시녀를) 왓티카헤아(가져다가) 툇팁타(열었다) 왓티레후(그녀가 보았다) 에트(격조사) 하예레드(아이를) 웨힌네(보라) 나아르(아이가) 보케흐(우는지라) 왓타몰(연민) 아로(그에게) 왓토메르(말했다) 미얄데(아이) 하이브림(히브리인) (이는)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리르호스: 기본형은 라하츠) 나왔다. 목욕한다는 것은 깨끗하게 한다는 의미가 있지만, 죄에 대한 정결과 관계가 있다. 이사야 116절에서『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강을 하숫가로 번역했는데, 하오르(예우르) 이다. 바로의 공주가 나온 곳은 예우르 강 가이다. 예우르 강은 요단강을 의미한다. 씻는 것에 대해서 창세기 18 4절에서 하나님(그리스도)과 천사 둘이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기 전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는데,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라하츠) 나무 아래서 쉬소서』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발은 세상에 있는 자를 의미한다. 세상에 있는 자(롯과 그의 가족)을 심판에서 건진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바로의 딸이 요단강에서 씻는 것은 율법에 대해서 죽는 것을 의미한다.

하늘과 땅의 개념으로 보면, 죄의 땅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가서 보면, 죄의 몸인 엣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되는 것이다. 심령 속에 하늘 문이 열리고 성전이 세워지고, 임마누엘(파루시안)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받는 장면이 등장한다. 마가복음 18-9절에서『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세례는 죽고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물에 죽은 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죽은 자를 성령으로 일으키는 것이다.

에스겔 2340절에서『또 사절을 먼 곳에 보내 사람을 불러오게 하고 그들이 오매 그들을 위하여 목욕하며 눈썹을 그리며 스스로 단장하고』그래서 목욕한다는 것은 신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바로나 바로의 딸이 강으로 나와 목욕하는 것은 그들의 신을 찾는 행위가 연결된다. 애굽의 신인 크롬이라는 강의 신이 있었는데,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함인 것이다. 출애굽기 715절에서 『아침에 너는 바로에게로 가라 보라 그가 물 있는 곳으로 나오리니 너는 나일 강 가에 서서 그를 맞으며 그 뱀 되었던 지팡이를 손에 잡고』바로의 딸은 세상 임금의 딸이다. 그녀가 제사 의식을 통해서 정결하려고 한 것이다. 세상 임금의 딸에게 모세가 다가가는 것이다. 공주가 갈대상자로 다가가는 것은 저주에서 생명으로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방주(테바)로 들어가는 자가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모세가 아들을 낳지 못하는 세상 임금의 딸에게 다가 가는 것은 메시야가 세상을 향하여 복음의 씨를 들고 가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물위를 걷는 예수가 등장한다. 물은 율법을 상징한다. 방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물에서 빠지는 자가 있는데, 그의 제자 베드로였다. 마태복음 1428-30절에서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불쌍히 여겨(왓타하몰:기본형 하말 2550)라는 말을 보면 기본어근;‘가엾게 여기다’ 함축적으로‘아끼다’: 불쌍히 여기다, 긍휼히 여기다, 아끼다라는 의미가 있다.

시녀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나아라(소녀)인데, 나아라는 짝을 만나야 한다. 시녀를 통해서 방주를 취하게 했다(라카흐). 울고 있는 아이는 나아르이다. 나아르와 하나가 되는 존재들은 모두 나아라가 되는 것이다. 바로의 딸이 나아르 위에 긍휼히 여긴 것이다. 예오르 강에서 씻는 자는 긍휼이 있다. 하나님의 긍휼로 모세를 바라보는 것이다.

바로와 바로의 딸은 율법을 상징한다. 바로의 딸은 긍휼을 가지고 있다. 율법 속의 긍휼인 여자는 후를 만난다. 즉 바로의 딸이지만, 그리스도를 만나는 자가 되는 것이다. 긍휼에 대해서 말라기 선지자는 말한다.『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같이(하말:긍휼히)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3:17)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이로다』히브리는 강을 건너 영생을 얻기 위해 아바드 하러 온 사람들이다. 바로의 딸은 히브리라는 의미를 알고 있는 것이다. 바로의 딸이 긍휼히 여겼다는 말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율법 속에는 긍휼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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