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9-12절

 3 9-12

וְעַתָּ֕ה הִנֵּ֛ה צַעֲקַ֥ת בְּנֵי־יִשְׂרָאֵ֖ל בָּ֣אָה אֵלָ֑י וְגַם־רָאִ֨יתִי֙ אֶת־הַלַּ֔חַץ אֲשֶׁ֥ר מִצְרַ֖יִם לֹחֲצִ֥ים אֹתָֽם׃

וְעַתָּ֣ה לְכָ֔ה וְאֶֽשְׁלָחֲךָ֖ אֶל־פַּרְעֹ֑ה וְהֹוצֵ֛א אֶת־עַמִּ֥י בְנֵֽי־יִשְׂרָאֵ֖ל מִמִּצְרָֽיִם׃

וַיֹּ֤אמֶר מֹשֶׁה֙ אֶל־הָ֣אֱלֹהִ֔ים מִ֣י אָנֹ֔כִי כִּ֥י אֵלֵ֖ךְ אֶל־פַּרְעֹ֑ה וְכִ֥י אֹוצִ֛יא אֶת־בְּנֵ֥י יִשְׂרָאֵ֖ל מִמִּצְרָֽיִם׃

וַיֹּ֨אמֶר֙ כִּֽי־אֶֽהְיֶ֣ה עִמָּ֔ךְ וְזֶה־לְּךָ֣ הָאֹ֔ות כִּ֥י אָנֹכִ֖י שְׁלַחְתִּ֑יךָ בְּהֹוצִֽיאֲךָ֤ אֶת־הָעָם֙ מִמִּצְרַ֔יִם תַּֽעַבְדוּן֙ אֶת־הָ֣אֱלֹהִ֔ים עַ֖ל הָהָ֥ר הַזֶּֽה׃

웨아타(그러므로) 힌네(보라) 차아캍(부르짖음) 브네(아들들) 이스라엘 바아(왔다) 에라이(나에게) 웨감(또한) 라이티(보았다) 에트(격조사) 하라하츠(학대) 아세르(관계사) 미츠라임(애굽) 로하침(억압하다) 오탐(그들을)

웨아타(그러므로) 르카(오다) 웨에쉬라하카(내가 너를 보낸다) (에게) 파라호 웨호체(네가 인도하다) 에트(격조사) 암미(나의 백성들) 브네(아들들) 이스라엘 밈미츠라임(애굽으로부터)

와요메르(말했다) 모게 엘(에게) 하엘로힘(하나님) (관계사) 아노키(내가) (관계사) 에렉(내가 갈 것이다) (에게) 파라호 웨키(관계사) 오치(내가 인도하다) 에트(격조사) 브네(아들들) 이스라엘 밈미츠라임(애굽으로부터)

와요메르(말하다) (확실히) 에헤에(나는 ~이다) 임마크(너와 함께) 웨제흐(그리고 이것) 르카(표적) (관계사) 아노키(내가) 셔라티카(너를 보낸다) 바호치아카(인도하였다) 에트(격조사) 하암(백성) 밈미츠라임(애굽으로부터) 타압둔(섬기다) 에트(격조사) 하엘로힘(하나님) (위에) 하하르() 하제()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개역개정)

 

웨아타 힌네(וְעַתָּ֕ה הִנֵּ֛ה )는 보라 라는 의미다. 부르짖음이 모이고 모여서 하나님께 들린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어 백성들을 이끌어서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겠다는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입으로 보내심을 받은 자였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하여 구원사역을 이루어 가신다.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에 주저한다.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감히 갈 수 있느냐 라는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혼란이 있는 것이다. 내가 누구관대 라는 말이 두번 반복된다. 그만큼 자신에 대해서 순간 혼란을 겪는 것이다.

사무엘상 162절에서도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사무엘이 이르되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그런데,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이것이 임마누엘이다. 모세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는 말이다.

아브라함도 100세에 하나님이 아이를 주겠다고 하는 말씀을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믿음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믿는 것이다. 로마서 418-25절에서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일방적으로 두번의 약속을 하셨다.『나는 약속한다. 너에게 자녀를 주겠다』고 하셨다.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었을 때, 자녀를 주겠다고 하신 그 약속은 죽을 병이 낫는 것 보다 더 믿을 수 없는 그런 약속이다. 아브라함은 100세가 되기 전, 99세까지는 믿음이 없었다. 사라도 속으로 웃었다. 하나님이『너는 웃었다』고 지적하니 『아니라』고 거짓말까지 했다. 아브라함은『백세가 되었는데, 어찌 자녀를 가지리요,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원하나이다』이스마엘이 바로 율법이라는 존재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이 쌓은 신앙을 말한다. 이스마엘은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없는 그런 존재였다. 주님은『이스마엘을 내어 쫒으라』고 하셨다. 오늘날 교회에서는 육신적, 율법적 사고에 젖은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삭과 같은 그런 교회가 되어야만 한다. 육신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영적 설교에 못견디어 한다. 이삭 외에는 구원받지 못한다. 갈라디아서가 증거하고 있다. 약속을 따라 난 자만 구원받는다. 육신을 따라 난 자는 내어 쫒김을 받는다. 이삭은 이스마엘을 핍박하지 않지만 이스마엘은 이삭을 핍박했다. 성령을 따라 난 자는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거나 핍박하지 않는다. 그러나 육신을 따라 난 자는 다른 사람을 핍박하거나 비판한다. 하늘로부터 오는 믿음이 오기 전까지는 육신에 거하는 믿음이다. 육신을 따라 난 자는 자기가 주인이기 때문이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믿는 믿음이 주님이 주시는 믿음이다. 믿음은 내 속에 신뢰할만한 것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주님만 붙잡는 것이 믿음이다. 아브라함이 자기를 신뢰하지 않을 때까지 하나님은 기다리신다. 이브라함이 100세가 되어서 그 믿음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다. 하나님이 약속을 주셔서, 아브라함이 받아드린 만큼이나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는 성경지식으로 쌓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으로부터 온 믿음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가 쌓은 지식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게 한다. 왜냐하면 만물보다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회개요, 회개없이 믿는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그런 믿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믿음이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이다.

『하야』는 내가 함께 하리라 라는 의미다. 함께 한다는 말은 임마누엘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임마누엘 하나님은 성도의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지는 일이다. 비록 육신은 성도의 몸이지만, 하나님이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다.  오트는 알파벳을 보면, 라메드와 카프인데, 라메드는 아버지와 아들과 내가 하나가 되는 말씀으로 된 표적이라는 것이다. 애굽에서 백성들을 이끌어 내어 산 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내가 너와 함께 하야 한다는 표적일 것이다.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홍해를 건너 시내산(호렙산)에 이르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하나님이 너(모세)와 함께 하는 증거라는 것이다. 이것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그림자(예표)가 된다.

우리는 성전에 대해서 잘 이해해야만 한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모든 말씀이 성전에 집중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에서 성전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이다. 악한 천사들이 사탄의 미혹으로 스스로 하나님 없이도 하나님의 성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것이다. 하나님은 악한 천사의 영을 흙속에 넣어서 인간이 되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인간에게 생명의 열매를 먹고 성전이 되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인간들은 성전에 온갖 우상을 세움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 자체가 우상인 것이다.

출애굽 당시에 하나님은 광야에서 성소를 만들고 항상 들고 이동하게 하셨다. 바로 이동식 성전이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성전이 이렇게 항상 함께 하는 것임을 보여주신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두고도 온갖 악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예루살렘 성전은 무질서했으며, 성전이 무너질 것을 예언하셨다. 이는 자신의 육체에 대한 죽음을 암시하는 말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성전이신 그의 아들을 보내주셨음에도 오히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여 승천하시고,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오셔서 성전이 되게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는 성전(지성소)을 믿는 자는 거의 없다. 네 마음이 성전이라는 말을 하시지만 와 닫지 않는 것이다. 심령 속의 성전이 바로 임마누엘(헬라어 파루시안)인 것이며,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직접 일을 하신다는 말이다.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이 산(시내산)은 성전을 의미한다. 성전인 시내산에서 불(성령)이 임하실 때 백성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성도의 심령에 성령이 임하실 때 성도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다. 예배는 어떤 형식이나 절차가 아니라 영(성령)과 진리(예수 그리스도)로 예배한다. 성도가 왕같은 대제사장으로서 심령 속에 임재하는 지성소에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 이것이 바로 예배라는 것이다.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분의 말씀을 통해서 구원의 사역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예배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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